바다신을
20230115, 포스타입 이전
모든 살아가는 것들의 운명運命을 바다는 지레 알고 있었다. 애달픈 목소리는 그치매 결국 끝을 맺는다. 수백 번의 삶의 마무리를, 생의 운명殞命을 눈에 담아왔기에,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 세계의 생명은 순환한다. 거둔 것이 있으면 베풀게 되고, 나눈 것이 있다면 비로소 돌려받는다. 이치는 쉬이 변화하지 않는다. 지독하게도 일률적인 흐름은 내리 선명하게 자리잡혀 있었다.
인간이란 것은 너무도 유약하고 가여운 존재들이라, 손가락 끝에 놓인 꽃잎과도 같이 바스라지곤 한다. 드물게 신을 경외하지 않던 인간들도 대개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다. 평안하고도 고요한 영원한 잠. 이따금 바다 옆에 묻히기를 바랐던 인간들이 있었거니, 바다신은 이를 거절하지 않았다. 밀려오는 파도와 함께 눈을 감으면 여린 생명이 생전 가장 좋아했던 꽃을 함께 흘려보냈다. 포말이 새하얗게 부서지고, 바슬대며 흩어지는 거품은 별을 그린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 하더랍니다.
무수한 별이 쏟아져내렸다. 빗발치는 유성우에 눈이 시려 가늘게 뜬다. 문득 시선을 떨구면 널리 퍼진 바다에 밤하늘이 오롯이 비쳤다. 찬연한 빛무리가 섬짓 가슴을 짓누른다. 저 별 가운데 바다가 떠나보낸 인간은 몇이나 될까. 개중 가장 밝은 별은 어째서인지 찾을 수 없었다. 대비하지 못한 작별은 애석하게도 하늘에게마저 준비 시간을 주지 못한 모양이지, 나는 이토록 다시 너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는데.
파도치는 물결에 맞춰 푸른 꽃이 기운다. 늘어진 옷자락이 여실히 물에 잠겼다. 손목에 걸려 다 헤진 꽃팔찌가 잔잔하게 흔들린다. 밤의 바람은 시리고도 날카로웠다. 뼈 마디마디를 헤집어 비트는 것만 같아, 주저앉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그제야 미뤄둔 비애가 치밀고 올라온다. 목을 틀어막는 애감에 낮은 신음소리가 울렸다. 바다가 울고 있었다. 근래 열흘 중 가장 고요한 파도 소리가 울렸다. 신이 아닌, 인간이 흐느끼는 울음이 해변가를 메운다.
을아, 이리도 매정하게 가 버리면 나는 어찌 살아가란 말이냐.
대비하지 못한 이별은 이토록 잔인하게 다가오는구나. 사랑했던 것이 사랑했던 것의 생을 끊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못했다. 원망은 돌고 돌아 오롯이 본인에게 향한다. 비통함에 몸서리를 친다. 네가 나를 만나지만 않았더라면, 네가 그토록 선한 인간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네게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자가 되지 못했단다. 애당초 그릇된 운명이었던 것일지 모르겠구나. 편협한 마음가짐은 미래를 바라보지 못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신이 아니겠느냐. 순간의 행복에 젖어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법을 망각했다. 그렇게 초래한 결과는…….
마지막 유성우가 떨어졌다. 하늘을 가른 하얀 빛이 아스라이 으스러진다. 그에 맞춰 신은 손을 거뒀다. 줄곧 함께 거닐었던 새하얀 모래 위를 홀로 지나쳤다. 파도 소리가 잠잠해졌다. 바다의 모든 것이 죽어버린 듯 고요한 적막이 밤의 간극을 채웠다. 신화의 마지막 밤이었다. 열흘 간의 재앙이 막을 내렸다.
만일 다음 생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땐 부디 나를 잊어주겠니.